[이승남 칼럼] 가을에 다녀온 고국과 베트남 여행
올해 여름은 지구의 온난화 영향인지 어느 해보다도 무더웠고 길었다. 9월에서 10월 중순까지 한달 가량 아내와 더불어 여행을 했다. 평소 이곳에 함께 살면서 가깝게 지내던 70대 중반 전후의 4가족 부부 8명이 동행했다. 대부분 비슷한 나이기 때문에 살아온 시절이 거의 같다. 일제 말기에 태어나 해방과 6·25를거치며 가난했던 시절을 지나 군 복무를 마치고 고국에서의 경제발전의 생활전선에서 모두들 고생도 했다. 결혼을 하고 어린 자녀들과 함께 미국에 이민 온 것도 거의 같은 1970년대였다. 나이 들어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친구들과의 여행은 너무나 즐겁고 인생에 삶의 기쁨을 주는 시간들 이었다. 더욱이 우리들은 아직 은퇴하지 않고 각자 비즈니스를 하는 관계로 제주도에서 개최하는 한상대회와 미주 총 상공회의소에서 처음 주관한 베트남 정부초청 경제사절단 일원으로 하노이를 방문하기도 했다. 우리들은 그 동안 고국을 방문하면 주로 서울에 머물다 오는 경우가 대부분 이었다. 이번에는 지방을 여행해보자는 생각에 모두들 전국일주 투어를 예약하고 떠났다. 여행의 코스는 서울, 전주, 담양, 광주에서 1박하고 보성, 벌교, 순천, 여수에서 2박 광양, 남해, 거제에서 3박 통영, 진주, 부산에서 4박 경주, 울진, 태백, 정선에서 5박 오대산, 고성, 속초에서 6박, 평창 동계올림픽 경기장 투어, 원주를 지나 다시 서울로 오는 7일간의 알찬 여행이었다. 이번 여행을 다녀온 가운데 지금도 생각나고 기억되는 것들을 몇 번에 걸쳐 나누어 보고 싶다. 한국에 도착한 다음날 깨어 보니 비가 내리고 있었다. 덕수궁 앞에서 만나 한진광광 버스로 떠났다. 토요일 아침 비 내리는 서울역과 용산을 지나 한강을 넘어 섰다. 서울을 나오니 차창 밖으로 보이는 모습은 잘 정돈된 논과 밭, 깨끗한 마을들, 전원이다. 잘 건설된 다리, 터널을 지나갔다. 또 유럽의 시골이나 미국의 농촌 마을 보다 더 아름다운 모습들이 펼쳐졌다. 처음 도착지인 전주에서 우선 점심을 먹었다. 문화의 도시 전주에서 순 토박이 음식과 토속주를 맛 있게 먹고, 마시고 관광객이 붐비는 전주 한옥마을 일대를 걸으며 구경하고 담양의 대나무 밭을 돌아보았다. 우리들은 광주의 홀리데이 인에서 잠을 잦다. 미국과 달리 이 호텔은 광주에서 특급호텔이라고 한다. 방도 넓고 모든 면이 쾌적했다. 특히 직원들의 서비스는 미국에서 보기 힘든 최상의 수준이었다. 우리들은 보성 녹차 밭의 장관을 둘러보고 보성군과 화순군을 포함한 내륙과 직결되는 포구인 벌교를 방문했다. 며칠째 오던 비가 멈춘 벌교는 논과 밭들이 어울리며 아름답게 보이고 멀리 보이는 끝 자락에는 바다가 보이는 그림 같은 고장 이었다. 바로 이 고장에서 자라고 어린 시절을 보낸 작가 조정래 선생을 기리는 태백산맥 문학관을 찾았다. 산 중턱에 자리잡은 조정래 선생의 문학관은 4층 유리건물로 그 크기와 우화한 자태가 눈길을 끌었다. 이곳에는 4년간의 자료조사와 6년간에 걸쳐 집필한 소설 ‘태백산맥’의 탄생, 작가의 삶과 문학, 1만6500매의 육필원고를 전시하고 있다., 매달 열리는 문학강좌 사랑방, 작가가 직접 거주하면서 집필하는 작가의 방 등 살아있는 문학관을 탐방한 것은 이번 여행의 큰 수확이었다. 작가의 세계와 사상, 역사를 통해 시대의 아픔과 끊임없는 사실과 진실에 대한 추적을 소설로 평생을 바친 한 작가를 조국에서 이처럼 국민들에게 교육하고 알리는 모습에 너무나 감명을 받았다. 대하소설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 등의 소설 속에서 작가는 모두1200여명의인물을 탄생시켰다. 그리고 1500만부 돌파라는 한국 출판사상 초유의 기록을 수립했다. 일제시대의 독립을 위한 투쟁, 남북의 분단과 이로 인한 전쟁과 비극에 따른 시대와 사회를 향한 뜨거운 애정을 작품으로 승화 시켰다. 전세계 수많은 사람들이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 헤밍웨이의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 등 전쟁을 소재로 한 작품들에 대해 절찬을 했고, 작가는 노벨상을 받기도 했다. 조정래씨의 작품은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중국어, 일본어, 스웨덴어 등으로 번역 출간되었고, 고국에서는 많은 상을 받았다. 세계적으로도 더 큰 작가가 되기를 바라며 우리는 여수로 향했다.